
그런 양승혁 감독과 게임음악과의 인연은 한국 게임산업이 급성장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주로 하던 그가 한국에서 롤플레잉 게임들이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레 게임음악에 참여하게 됐다.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양덕' 성향도 있어서 당시 한국 게임 시장에 필요한 음악 스타일이 제가 잘하는 부분과 맞았다. 덕분에 운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라고 돌아봤다.
웅장한 클래식 음악 외에도 여러 장르를 즐기고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양승혁 감독은 "모든 장르를 좋아하다 보니, 한 장르만 제대로 못한다는 얘기도 듣는다"면서도 "어린 시절 대중음악 경험이 음악 작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여러 장르가 융합되는 게임 본질과 닮아 있어서 즐겁게 할 수 있다"라고 돌아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으로 '마녀의 샘'과 '라핀'을 꼽은 양승혁 감독은 "음악 제작 시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게임 음악은 플레이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두 작품은 '음악 자체에 집중하자’는 기획 방향 덕분에 창작자로서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양승혁 감독이 게임 음악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은 것은 '상황별 다양성’이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의 경우 영상이 고정돼 있어 연출자가 의도한 스토리와 감정을 따라야 하지만, 게임은 이용자마다 경험이 다르고 상황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에 상황별로 다르게 작동하는 인터랙티브 뮤직이 필요하다며 "같은 상황도 어떤 이용자에겐 긍정적이고, 다른 이에겐 부정적인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음악에 기술과 디자인이 들어가야 하는 도전적인 구조다"라고 게임 음악 작업의 난점을 밝혔다.
그러나 게임음악에서 가장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으로 '오래도록 음악을 듣는 경험'을 꼽았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플레이 시간이 길기 때문에 창작물이 더 오래 즐겨진다는 점이 음악가로서 큰 보람이다"라고 말한 뒤 아쉬운 점으로 "게임 내에서는 음악이 플레이 상황에 맞춰 감정 폭을 제한해 인게임 음악과 OST 버전의 구분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었다.
한편 게임을 '문화'로 보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양승혁 감독은 "지금은 게임이 가장 큰 문화 콘텐츠"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오래 즐기는 것이 문화라면 게임이 선두라는 설명이다.

양승혁 감독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여러분이 즐겨주는 게임에 제가 무엇인가를 더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보람"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플레이어들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인사를 전했다.
김형근 기자 (noarose@dailyga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