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설 연휴를 맞이해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시간 역시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게임 속 픽셀들이 예견해 온 '약속된 미래' 중 하나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30여 년 전 개발자들에게 2026년은 현재의 기술적 씨앗이 발아하여 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근미래'의 상징이었다. 투박한 그래픽 속에 심어두었던 그들의 예언은 때로는 섬뜩한 디스토피아로, 때로는 정의가 재건되는 희망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 '캡틴 코만도' 속 2026년 "외계인의 침공과 슈퍼 히어로의 등장"
캡콤이 1991년에 아케이드용으로 선보였던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 '캡틴 코만도'가 상상한 2026년은 극단적인 사이버펑크적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장르적으로는 캡콤의 전형적인 액션 스타일을 계승하며 최대 4인 협동 플레이를 지원하는데, 적의 기계를 탈취해 직접 조종하는 '라이드 아머' 시스템이 재미요소 중 하나로 꼽혔다. 특히 작중 등장하는 탑승형 로봇의 모습이 꾸준히 개발이 이뤄져온 조종형 휴머노이드 로봇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며 기술의 형태적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접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게임에 등장하는 외계인의 침공이나 슈퍼 히어로의 등장은 없었고, 게임 속 무력 충돌 양상과는 달리 현실의 로봇 기술은 산업 및 레저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다는 점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 '아레나: 죽음의 미로' 속 2026년 "미디어 권력이 통제하는 세상"
에덴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가 개발하고 세가가 휴대형 게임기 게임기어 용으로 선보였던 쿼터뷰 시점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 '아레나: 죽음의 미로'는 2026년의 사회를 미디어 권력에 의한 통제와 저항이라는 테마로 풀어냈다.
게임에서는 부패한 정부와 거대 미디어 기업 '애스트랄넷 방송사(ABC)'가 결탁해 방송을 통해 전 인류를 세뇌하고 사고를 마비시키며, 민주주의 저항군이 정부의 사악한 계획을 송출해 이에 맞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용자는 엄청난 화력의 무기들과 방심할 수 없는 함정의 위험이 도사린 '죽음의 미로'를 돌파하는 액션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게임 속 2026년의 풍경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느낌보다는 특정 세력에 일반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방어선이 구축된 듯한 살풍경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보안 요원뿐만 아니라 유전 공학으로 탄생한 변이체들이 적으로 등장하며 '목적을 위해서는 생명 윤리조차 무시된 디스토피아'의 분위기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미디어가 부추기는 특정 알고리즘에 의한 '확증 편향'이 게임 속 세뇌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것이 정보의 중앙 집권화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에 있어서도 경계해야 할 부분으로 남아있다.

◆ '세가가가' 속 2026년 "추락한 게임 제국의 재건과 반격"
히트메이커가 개발하고 세가가 2001년에 드림캐스트용으로 출시했던 '세가가가(SGGG)'는 자사의 하드웨어 사업 철수라는 현실을 메타 서사로 이용한 독특한 시뮬레이션 RPG으로 2026년이 '희망'의 시기로 다뤄진다.
이 게임은 라이벌 기업에 밀려 시장 점유율이 3%까지 추락한 2025년부터 위기 타개를 위해 영입된 소년 '타로 세가'를 중심으로 개발실을 탐험하고 팀을 꾸려 게임 개발을 지휘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중 게임이 시작되는 2025년이 인력을 모으고 기반을 닦는 준비기였다면, 2026년은 본격적으로 신작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출시해 점유율을 탈환하는 '핵심적인 도약기'로 그려진다.
플레이 상황에 따라 2026년은 세가가 다시 시장의 패권을 가져오는 '승리의 해'가 될 수도 있는데, 이는 실제 역사를 미래의 시점에서 뒤집으려는 대체 역사적 희망을 담고 있다. 다만 지친 개발자들을 '독설'로 제압해 낮은 연봉에 영입하는 황당한 전투 시스템은 다소 자학적인 유머를 보여준다.
또한 연도가 바뀜에 따라 요동치는 점유율 수치와 라이벌 기업과의 경쟁은 기업의 생존권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2026년의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이며, 시대를 초월한 비즈니스 현장의 냉혹함 속 기업 구성원들의 활기를 동시에 전달한다.

◆ '역전재판4' 속 2026년 "사법 체계의 암흑기 속 정의의 가치를 논하다"
2007년 출시된 캡콤의 법정 배틀 어드벤처 '역전재판 4' 속 2026년은 사법 체계의 암흑기 속 변화의 움직임을 다루고 있다.
전작으로부터 7년이 흐른 2026년을 주요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는 이 게임은 전설적인 변호사였던 나루호도 류이치가 위조 증거 제시 혐의로 자격을 박탈당한 이후 법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법의 암흑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용자는 신인 변호사 오도로키 호스케가 돼 살인 사건의 피고인이 된 나루호도를 변호하며 7년 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부패한 사법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분투하게 된다.
이 게임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당시 일본에서 논의 중이던 '배심원 제도'를 게임의 요소로 끌어들인 것이다. '재판원 제도'로 불리며 2009년 도입된 이 제도는 무작위로 선정된 6명의 시민 재판원과 3명의 직업 판사가 합의부를 구성해 중범죄 사건의 유무죄와 형량을 함께 판단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이에 이 게임은 이 제도의 도입에 앞서 '인간의 양심'과 '정의의 가치'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또한 팔찌의 힘을 이용해 증인의 미세한 근육 경련이나 땀 등 긴장한 반응을 포착해 거짓말을 찾아내는 '꿰뚫어보기' 시스템을 통해 심리전 기술적인 변화도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최근 많이 언급되는 AI심리와의 연결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어 심리 과정의 복합적인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변화 덕분에 이 게임은 프랜차이즈 게임이 어떻게 변화를 꾀해야할지에 대한 좋은 사례로 꼽히며 팬들로부터 주인공의 변화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기도 했다.

◆ '피어3' 속 2026년 "윤리성 문제와 초자연적 재앙의 디스토피아"
2011년작 호러 슈팅 게임 '피어 3(F.E.A.R. 3)'는 정부의 통제력이 상실된 무법 도시를 배경으로, 사기업이 초월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2026년의 비극을 그린다.
이 게임의 이야기는 2025년 발생한 대규모 폭발 사건으로부터 9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되며, '프로젝트 오리진'으로 탄생한 형제인 포인트맨과 페텔이 모든 사건의 근원이자 어머니인 '알마 웨이드'를 둘러싼 음모를 파헤치며 거대 기업 아마캠과의 처절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작중 2026년은 생체 실험의 희생양이었던 알마의 분노가 폭주하며 도시 전역이 현실과 환각이 뒤섞인 생지옥으로 변모한 상황이며, 거대 방위산업체 아마캠은 자신들의 치명적인 과오를 은폐하기 위해 자아 없는 '복제 인간 부대'를 투입해 무차별적인 소탕을 자행한다. 전작들의 동양적 호러 스타일 대신 전형적인 SF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군사 기술과 생명 공학의 오용이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극단적인 연출로 고발한다.
현실의 2026년은 다행히 게임처럼 인체 복제 군대를 운용할 만큼 기술이 치닫지는 않았으나, 기술과 윤리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마주할 수 있는 '인재(人災)'에 대한 공포만큼은 생생하게 전달한다. 픽셀 속에 갇혀 있던 알마의 분노는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첨단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이나 그를 뒷받침할 윤리적 통제 장치가 절실함을 역설하고 있다.

◆ '옵저베이션' 속 2026년 "인공지능의 자아 자각과 기술적 특이점"
노 코드(현 스크린 번 인터렉티브)가 2019년 선보인 코스믹 호러 어드벤처 게임 '옵저베이션'은 지구 밖으로 시선을 돌려 2026년의 우주 탐사 과정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에 대해 인공지능과 인간의 역할을 다룬다. 이용자는 인간 대원이 아닌 우주 정거장의 관리 AI 시스템 '샘(SAM)'이 되어, 토성 궤도로 이탈한 정거장에서 생존자인 엠마 피셔 박사를 돕고 시스템을 통제하며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독특한 시점을 선사한다.
게임의 핵심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보조 도구를 넘어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는 '기술적 특이점'의 순간을 묘사했다는 점이다. 이용자는 정거장 내부의 카메라와 드론을 조작하며 인간의 명령을 수행하지만, 점차 미지의 신호에 반응하며 주체적인 의지를 형성해 나가는 '샘'의 변화를 목격한다. 이는 2026년이라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인류가 설계한 기술이 인간의 이해와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찰나의 공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실제 현실의 2026년 역시 생성형 AI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는 범용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점이다. 게임이 미지의 존재와 결합한 AI의 '자아 자각'이라는 장르적 공포에 집중했다면, 현실의 2026년은 'AI 윤리와 안전한 통제 방안'이라는 실천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기술의 진화가 인간의 역할을 어떻게 재정의하게 될지에 대한 이 작품의 질문은, 가상의 서사를 넘어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마주한 가장 시급한 화두로 다가온다.

◆ 상상이 현실이 되는 지점에서 마주한 2026년
과거 게임들이 바라본 2026년은 단순히 흘러가는 연도 표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사법 정의의 실천, 미디어 권력의 책임, 기업의 생존 전략, 그리고 인공지능의 존재론적 변화까지 인류가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갈등과 가능성을 미리 시험해 본 '가상의 실험장'이었다. 누군가는 픽셀 속에 섬뜩한 경고를 남겼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무너진 가치를 재건하는 희망을 꿈꿨다.
실제 2026년의 우리는 당시 개발자들이 우려했던 사법 시스템의 신뢰 위기나 정보의 양극화, 그리고 인공지능 윤리라는 실질적인 과제들을 일상의 풍경으로 마주하고 있다. 게임 속 서사들이 공통으로 던진 메시지 역시 기술 그 자체의 발전보다 그 기술이 담아내는 '인간의 가치'와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빛이 없는 동굴 속 한 걸음처럼 막연했던 미래는 어느덧 우리 곁에 실재하는 조각들이 되어 나타났다. 픽셀 속에 담겼던 상상의 파편들을 보며 우리가 깨닫는 것은 "미래는 단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낸 가치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라는 사실이다. 게임이 꿈꿨던 2026년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정의로운 내일을 일구어 나가는 것,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남겨진 '진짜 퀘스트'일 것이다.
김형근 기자 (noarose@dailygam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