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작품의 압도적인 성취와 별개로 출시 초기의 기술적 완성도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특히 PC판에서는 당시 최고 사양의 컴퓨터에서도 새로운 지역이나 시각효과를 불러올 때 화면이 순간적으로 끊기는 '스터터링(Stuttering)' 현상이 반복됐다. 이런 끊김은 회피와 공격 타이밍이 중요한 3인칭 액션 게임에서 더욱 민감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게임 엔진은 그래픽 렌더링, 물리 법칙 계산, 소리, AI 등 게임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기술을 모아둔 핵심 소프트웨어 도구 상자이다. 영화와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영화를 만들려면 카메라와 렌즈, 조명, 촬영장, 음향 시설 등 제작시설이 필요하다. 게임 엔진은 이러한 제작 시설로 비유할 수 있다. 게임사는 게임 안에 영화로 비유하면 배우에 해당하는 캐릭터, 극본에 해당하는 이야기, 소품에 해당하는 오브젝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채워 넣는다. 영화가 콘텐츠를 제작시설을 사용해 한 편의 영상을 만들듯, 게임 엔진은 게임 내 콘텐츠를 이용자의 플레이에 따라 영상, 소리 등으로 출력해준다. 게임은 영화와 달리 상호작용이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동작하는 게임 엔진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상용 엔진을 사용하면 개발사는 이러한 '제작시설'을 처음부터 만들지 않아도 된다. PC 환경이나 콘솔, 모바일에서 이미 검증된 기술을 활용할 수 있고, 해당 엔진에 익숙한 개발 인력도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다. 즉, 개발 기간을 줄이고 스터터링이나 랙 현상 등 기술적 실패 가능성을 낮추는 데 유리하다.
이런 점에서 '붉은사막'을 제작한 펄어비스의 선택은 인상적이다.
펄어비스는 세계적인 상용 엔진을 가져다 쓰는 대신 자체 개발한 블랙스페이스 엔진으로 '붉은사막'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용자 경험을 희생한 것이 아니다. 상용 엔진을 넘어서는 광대한 지형과 밀집된 도시의 건물, 대규모 전투, 수많은 NPC, 날씨 변화와 물리 효과, 머리카락과 의상, 물과 안개, 각종 오브젝트를 구현했다. 게다가 PC 버전의 최적화가 매우 뛰어나서 극찬을 받았다. 매우 고사양의 컴퓨터가 아니더라도 전투나 이동에서 버벅이거나 끊기는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블랙스페이스 엔진은 '붉은사막'과 같은 오픈월드를 구현하기 위해 설계된 만큼 작품이 원하는 표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넓은 갈대밭, 나뭇잎 하나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는 표현, 세부 지형의 표현 등 게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성능의 저하 없이 정확히 묘사했다. 낙하와 비행, 폭포와의 상호작용, 울타리와 오브젝트 파괴 등 다양한 물리 기반 요소를 구현해 기존 오픈월드 게임과 다른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감각을 보여줬다.
그 결과 '붉은사막'은 발매 83일 만에 글로벌 판매량 600만 장을 돌파했다. 주요 PC 플랫폼인 스팀의 동시접속자 27만 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방대한 게임의 볼륨과 '탐험하는 맛'을 살린 콘텐츠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재미를 끊김 없이 독특한 화면과 조작으로 옮겨주는 엔진의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김대일 펄어비스 창업자이자 의장이 자체 엔진으로 '붉은사막'을 개발하기로 결정한 것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었을 것이다. 수년의 개발 기간과 막대한 비용이 들 뿐더러, 완성후에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최적화 문제 등 기술적 실패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한 이후 판매량이 커질수록 자체 엔진의 가치는 커진다. 상용엔진을 사용했다면 계약 조건에 따라 판매 성과의 일부를 로열티로 지급해야 했을 수도 있다. 600만 장 이상 규모의 흥행작에서는 작은 비율도 상당한 금액이 된다. 하지만 자체 엔진은 그런 비용이 들지 않는다.
또한 기술적으로도 성공 이후에는 이 과정에서 개발된 게임 엔진과 문제를 해결한 경험은 온전히 축적된다. 이렇게 축적된 기술은 '도깨비' 등 다음 작품의 출발점이 되고, 펄어비스가 더 크고 복잡한 세계를 만드는 기반이 된다. 다음 세대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생산 설비와 경험도 함께 확보한 셈이다.
게임은 과학기술과 문화가 만나는 산업이다.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와 아름다운 세계를 그리는 미술가, 음악가가 필요하다. 동시에 수학과 물리학, 컴퓨터공학, 네트워크 기술도 필요하다. 게임은 문화상품이면서 첨단 소프트웨어이고, 예술작품이면서 고도의 기술집약 산업이다. 우리가 게임에서 보는 숲과 도시, 전투와 모험의 이면에는 수많은 공학적 계산과 기술적 선택이 숨어 있다.
K-게임이 전세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좋은 판매 실적을 올리는 것은 자랑스럽다. 그러나 그 게임을 움직이는 엔진까지 우리 손으로 만들고, 성공했다는 것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김대일 의장의 과감한 결단과 '붉은사막'의 성공이 놀라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글=나현수 게임칼럼니스트
정리=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