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게임이 되기 싫은 게임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916150942087540eb81adcc4e1839820252.jpg&nmt=26)
PC MMORPG가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전, 종이와 연필, 주사위 그리고 같이 게임을 즐기는 친구만 있으면 몇 시간이고 중세의 던전으로 모험을 떠날수 있었다. 거기서 필자는 전사도 되고 마법사도 되고 궁수도 되는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았고, 동료와 함께하거나, 때로는 혼자서 캐릭터가 강해지는 재미를 느낄수 있었다.
물론 초기 싱글플레이 RPG는 개발자가 미리 만들어 둔 지도와 대사, 선택지 안에서 움직여야 했다. 대신 MMORPG 시대가 오면서 다른 이용자들과 만나고, 파티를 만들고, 거래하고, 싸우면서 다시 상당한 자유가 생겼다. 컴퓨터 RPG가 다시 TRPG의 자유도를 획득해 나가게 되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그럼 TRPG는 게임일까? 여기에 TRPG가 게임이 아니라고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TRPG가 갖고 있던 높은 자유도를 정보처리 기술로 구현하는 서비스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MMORPG가 우선 그렇다. 그런데 MMORPG는 하나의 세계라는 제한이 있었다. 그마저 극복하는 서비스는 계속 시도되고 있다. 다양한 체험이나 게임을 할 수 있는 메타버스가 그랬고, 지금은 생성형 AI를 활용한 캐릭터 채팅과 인터랙티브 스토리 서비스도 자신이 어떠한 세계를 플레이할지 정할 수 있다.
"나는 성문을 몰래 넘어간다."
과거에는 게임 마스터와 주사위가 그 결과를 판단했다면 이제는 AI가 답한다.
"경비병에게 들켰다. 어떻게 하겠는가?"
이용자가 다시 행동을 입력하면 AI가 새로운 상황을 만든다. 여기에 이미 정해진 캐릭터의 능력치, 아이템, AI가 주사위를 굴려 성공과 실패의 판정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TRPG나 MMORPG와의 차이는 더욱 작아진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런 서비스들은 자신을 게임이라고 부르는 데 상당히 조심스럽다. 어떤 경우에는 게임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국에서 게임물로 판단되는 순간 등급분류 체계에 들어가고, 온라인 게임에는 본인확인과 게임과몰입 예방 관련 의무가 따라온다. 더 나아가 게임의 결과로 사소한 경품을 제공하더라도 사행성 관련 규제가 적용되고,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제공한다면 확률정보 표시의무도 주어진다.
물론 각각의 규제에는 타당한 목적이 있다. 청소년을 보호해야 하고, 게임의 사행화를 막아야 하며, 이용자가 돈을 지불하는 확률형 상품의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규제의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먼저 "이것이 게임인가"를 판단하고, 게임이라는 답이 나오면 게임산업법이라는 규제 묶음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을 했는가'보다 '무엇인가'라는 지위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상대적으로 행위 자체를 직접 규제하는 방식이 많이 활용된다. 미국에서는 게임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최종 획득 콘텐츠에 확률성이 있다면 소비자를 기만했는지, 아동에게 부당한 구매를 유도했는지를 소비자보호법 등을 통해 판단한다. EU도 가격이나 상품의 특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는지, 아동에게 구매를 직접 권유했는지 등을 문제 삼는다. 엄격하다고 알려진 일본의 경품규제 역시 게임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거래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경품이나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는지를 본다.
즉 게임인지 AI 서비스인지 메타버스인지보다 실제로 어떤 행위가 있었는지를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이런 행위규제를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게임사의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전자상거래법상 기만행위의 관점에서도 조사하고 제재한다. 또한 청소년보호법 상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면 청소년 보호를 위한 추가 본인확인 의무 등을 부여 받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행위규제보다 더 강한 규제가 어떠한 작품이 '게임물'로 판명되는 순간 '게임산업법'에 의해 부여 받게 된다. 중복규제도 문제이지만, '게임산업법'의 규제가 일반 행위 규제보다 더 강한 것도 문제이다.
더 이상한 것은 산업정책이다. 해외에서는 게임산업 지원이나 세제혜택을 받기 위해 자신의 콘텐츠가 '게임'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게임이라는 정체성이 산업지원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영국은 'Video Games Expenditure Credit'이라는 제도를 두고 게임 제작비의 일정 부분에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프랑스에는 'Crédit d'Impôt Jeu Vidéo'라는 제도로 적격게임 개발비의 30%를 세액공제하고, 'Fonds d'aide au jeu vidéo'이라는 직접 보조금을 주는 제도도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자신이 제작하는 콘텐츠가 게임이라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새로운 서비스가 게임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지원은 사실상 없다. 그래서 게임의 원형 가운데 하나인 TRPG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 AI 서비스가 등장했는데도 사업자는 "우리는 게임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생성형 AI와 메타버스는 앞으로 게임과 비게임의 경계를 더욱 흐리게 만들 것이다.
AI가 소설을 써주다가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를 바꾸면 언제부터 게임이 되는 것일까? 그것이 이른바 스토리를 즐기다 개인에 선택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비주얼 노벨' 장르의 게임과 어떻게 다르다고 볼 수 있을까? 또한 AI 캐릭터와 대화하다 전투 기능 하나가 붙으면 게임이 되는가? 메타버스에서 친구와 이야기하다 같이 특정 체험을 시작해 경쟁하면 그것은 게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일일이 경계선을 긋는 것보다 이제는 '무엇이라고 부르는가'에 더 많은 책임이 부여되는 게임법 체계에서 '무엇을 하면 안되는가'를 검토하는 게임 규제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오히려 개발자가 게임이라는 상품을 제작할 때, 정책적으로 이를 지원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제작비 세액공제이건, 전략산업지정을 통한 지원이건, 보조금이건 구체적인 방안은 중요치 않다. 현재 개발자의 인식인 내 콘텐츠가 게임이 되면 받는 지원은 없고 규제만 많다는 그 생각을 깨트릴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오히려 게임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개발자가 인식하게 될 때, 더 많은 게임이 만들어져, 게임산업이 발전하고 궁극적으로 게임 문화도 발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메타버스, AI 인터렉티브 서비스도 자신의 콘텐츠가 '게임'에 편입되길 바랄 것이다.
게임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는 메타버스와 AI 인터렉티브 채팅 서비스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게임에 대한 규제와 진흥 정책이다.
글=나현수 게임 칼럼니스트
정리=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