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도입 취지와 달리, 까다로운 인증 절차 탓에 청소년 이용자 절반 이상이 법정대리인인 부모의 동의를 받기를 포기하고 부모 명의를 도용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 모바일게임이나 스팀·로블록스 등 해외 플랫폼은 비껴가는 '갈라파고스식 규제' 탓에 국내 PC 온라인게임의 손발만 묶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법)' 제12조의3에 따라 PC 온라인게임에 가입하려는 모든 이용자는 실명·연령 확인 및 본인인증을 거쳐야 한다. 만 19세 미만 청소년은 부모 등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필수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의 미성년자 회원가입 절차를 보면 이 제도가 얼마나 무거운 '허들'인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입 페이지 접속부터 약관 동의, 본인인증을 거쳐 보호자 약관 동의, 보호자 본인인증(휴대폰·신용카드 등)을 거쳐 가입을 완료하기까지 무려 12단계를 거쳐야 한다. 휴대폰이나 신용카드가 없는 미성년자와 외국인은 아예 첫발조차 떼지 못한다.

◆ 청소년 보호도 못하고 '도용'만 양산…유명무실한 규제
문제는 이탈한 청소년들이 게임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부모 등 성인 명의 계정을 도용하는 '우회 경로'를 택한다는 점이다. 성인 게이머들 대부분은 고포류 게임을 비롯한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에서 초등학생이나 할 법한 어휘를 사용하는 '어른 같지 않은' 게이머들을 만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번거로운 법정대리인 동의 대신 부모 명의 도용을 선택한 청소년들은 연령 등급과 맞지 않는 게임을 아무 제한 없이 즐기고 있다.
부모 명의 도용의 역효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성인 계정으로 접속한 청소년에게는 청소년 보호장치(이용시간 제한, 결제 한도, 채팅 제한 등)가 전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제 사고가 발생해도 미성년자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워 환불을 받지 못하는 등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부가 강제한 '부모 개입' 장치도 서류상으로만 작동할 뿐인 것으로 파악됐다. 법정대리인에게 발송되는 게임이용내역 고지 이메일의 열람률이나 실제 링크를 클릭해 내역을 확인하는 비율은 상당히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시간선택제의 실제 이용률도 극히 낮은 수준으로, 규제의 실효성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모바일은 패스, 해외 게임은 면제…국내 PC 온라인게임만 '역차별' 독박
산업 간, 플랫폼 간 형평성 문제도 심각하다. 문화 콘텐츠 소비의 중심축인 모바일게임은 '게임산업법 시행령'에 따라 본인인증 및 법정대리인 동의 의무에서 제외돼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모바일게임 이용률은 91.7%로 PC 온라인게임(53.8%)을 압도한다. 정작 청소년이 가장 많이 몰리는 모바일은 규제하지 않고, 고사 직전인 PC 플랫폼만 옥죄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 등급분류 수치만 봐도 격차는 극명하다. 2025년 한 해 동안 자체등급분류사업자를 통해 등급분류를 받은 게임 30만4410건 중 대부분이 구글·애플 등을 통한 모바일게임인 반면, PC 온라인게임은 446건(0.14%)에 불과했다. 규제가 살아있는 PC 플랫폼으로의 신작 유입이 그만큼 말라붙었다는 뜻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개화하고 있는 12조 원 규모의 HTML5 웹게임 시장에서도 '본인인증 및 법정대리인 동의 제도'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진입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HTML5 게임은 다운로드 없이 브라우저에서 '즉시 실행'하는 간편한 인터페이스가 핵심인데, 가입 첫 단계부터 본인인증 팝업창이 뜨는 순간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CTW(G123)가 이 방식으로 연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하며 나스닥 상장까지 성공한 것과 대조적이다.
◆ 국회·정부 규제 완화 공감대…"인증 면제하고 실효적 청소년 보호로 전환해야"
다행히 정치권과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국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규제 완화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김성원, 민형배, 강대식, 조승래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의 핵심은 일관되게 '전체이용가 게임에 대한 본인인증 및 법정대리인 동의 제외'를 골자로 한다.

게임업계는 정부와 국회의 이 같은 움직임에 적극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실질적인 효과를 보려면 본인인증뿐 아니라 '법정대리인 동의 절차'까지 함께 패키지로 제외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증을 면제해 청소년을 합법적인 양지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인 뒤, 시스템적으로 실효성 있는 보호 조치를 취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는 논리다.
◆ 가입 허들 낮추고 유해 기능 이용 시점에 인증 요구하는 유튜브 방식 고려해야
글로벌 영상 플랫폼 유튜브의 회원 가입 방식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는 가입 없이도 콘텐츠를 즐길 수 있고, 만 14세 이상 이용자는 가입 시점에 본인인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용자가 결제나 유해 콘텐츠 접근 등 실제 보호가 필요한 길목에서만 선택적으로 인증을 요구한다.
전체이용가 게임에 한해서라도 가입 단계에서의 인증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추후 이용자가 결제를 비롯한 추가 기능 이용을 원할 경우 본인인증을 하도록 한다면 청소년 보호라는 '본인인증 및 법정대리인 동의 제도'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면서도 산업별 형평성 문제, 국내 기업 역차별 문제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특히,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글로벌 HTML5 게임시장에서 국내 게임사들이 경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전체이용가 게임에서의 가입 절차를 단순화하거나 없애는 것이 필수다. 전체이용가를 포함한 모든 PC 온라인게임에 획일적으로 까다로운 인증을 요구하는 지금의 낡은 규제는 국내 기업들이 HTML5 게임 시장 진입조차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그 사이 해외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체이용가 게임의 가입 허들을 낮추는 대신, 미인증 계정에는 채팅이나 거래 등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는 기능을 제한하고, 결제 단계에서 별도의 본인인증이나 보호자 인증을 거치게 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나아가 로블록스 사례처럼 AI 기반 연령 추정 기술을 도입하고 성인-청소년 간 대화를 차단하는 등 고도화된 자율 보호 조치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강제적 셧다운제가 폐지된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그 낡은 찌꺼기가 여전히 국내 게임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본인인증 및 법정대리인 동의 제도'는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그들을 명의 도용이라는 잠재적 범죄로 내몰고 있을 뿐이다. 허울뿐인 '인증' 집착을 버리고, 글로벌 기준에 맞는 실효성 있는 청소년 보호 대안과 규제 혁신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