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무전기 찾을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거 아냐?”
“무전기를 찾게 되면 아마 저희를 찾으려고 할 거예요.”
미하일 중위가 수첩을 가리킨다.
“여기 이렇게 반란군의 이동 경로를 보면 중복되는 것도 있고 엉켜 있는 것도 있거든요. 이걸 보면 저쪽의 지휘체계가 일사불란한 건 아니라는 거죠. 아마 인편으로 명령이 전달되는 거 같아요. 아마 그 무전기가 공용통신을 하는 기지국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네요. 장거리 통신도 가능하고요. 아마 그 무전기를 반란군이 찾게 되면 저희에 대한 추적이 더 심해질 거 같아요.”
“그럼 뭐 어쩌자는 거야?”
란돌 대장이 짜증을 낸다.
“저희가 먼저 찾아야죠. 어서 움직이죠.”
미하일 중위가 방향을 잡는다. 란돌 대장이 뭐라고 하려 했으나 페이가 씨익 웃으며 미하일 중위를 따르자 란돌 대장은 마치 어린 양처럼 아무 말 없이 일행을 따른다.
모든 건 미하일 중위의 말 대로였다. 미하일 중위가 예측한 위치에서 무전기를 찾아냈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전기를 멘 반란군을 찾아냈다. 무전기를 멘 반란군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다리에 총상을 입고 출혈과다로 숨진 모양새였다.
“이 녀석은 왜 여기 와서 이러고 있지?”
란돌 대장이 반란군의 물건을 이리저리 뒤진다. 반란군의 몸에서 야전식량 몇 개를 찾아 페이에게 두 개를 주고 아이딘과 미하일에게는 각각 하나씩 나눠 주고는 자신도 하나 베어 먹는다.
미하일은 무전기를 벗겨 살펴본다.
“그거 작동되는 거면 그걸로 아군을 부르면 되는 거 아냐?”
“이게 그렇게 일반적인 무전기 같지는 않은데요. 가져가서 좀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그 무거운 걸 뭐 하러 들고 가? 그냥 부수고 가!”
란돌 대장이 또다시 씩씩거린다. 그렇지만 개의치 않고 미하일은 주섬주섬 반란군의 물건들을 챙긴다.
반란군의 제식장비야 기존 중앙군의 장비와 동일하다. 단지 반란군의 제식총기는 AK47로 중앙군의 제식총기인 M16, M14와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두 총 모두 대재앙 이전 총기들의 레플리카를 쓰는데 반란군이 굳이 쉽게 구할 수 있는 M14나 M16을 마다하고 AK47을 사용하는 이유는 루체 왕국에서 이 총을 대량으로 공급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다.
란돌 대장과 일행은 AK47과 몇 가지 물건들을 챙겼다. 그리고 시체는 안 보이게 잘 숨겨 버렸다. 란돌 대장은 자신의 군복 점퍼를 벗어 페이에게 입혀 주었다. 그리고 반란군의 점퍼를 자신이 입었다. 피가 몇 방울 튄 흔적이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왼쪽 팔에 있는 국가 문장만 다를 뿐 중앙군이나 반란군의 군복은 동일했기 때문이다.
란돌 대장이 무전기를 버리고 가라고 잔소리를 해 댔지만 미하일 중위는 끝내 무전기를 짊어졌다. 하지만 부상과 피로 때문인지 무전기를 메자마자 휘청했다. 그래서 란돌 대장이 아이딘에게 무전기를 메게 하자고 하자 이번에는 미하일 중위가 계속 안 된다고 한다. 군사작전에 민간인의 개입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멘다고 한다.
결국 비틀거리는 미하일 중위에게 란돌 대장이 짜증을 내며 자기가 무전기를 짊어진다. 그리고 일행은 반란군을 피해 다시 길을 떠난다.
* * *
오늘은 미하일 중령을 비롯한 십여 명의 중앙군 전사자에 대한 합동 영결식이 열리는 날이다. 늘 슬픈 날이 그렇듯이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렸다.
루디안시 시청 광장에서 벌어지는 행사에 이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 대재앙 이전에는 삼일장, 오일장, 칠일장 등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엄청나게 긴 날짜 동안 장례를 치르곤 했는데 지금은 통상적으로 장례는 하루에 끝나는 게 원칙이다. 생각해 보면 대재앙 당시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죽어 가는 시점에 며칠씩 지내는 장례가 존재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죽은 자보다는 산 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이기도 했다.
랄프 프린츠 장군은 그저 담담했다. 아들의 죽음이 현실로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썽쟁이 아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대재앙 때 아내를 잃었을 때도, 대재앙 직후에 미하일의 동생을 잃었을 때도 프린츠 장군은 담담했었다. 군인 가문에서 어찌 보면 죽음은 늘 옆에 있는 생활과도 같은 것. 그러나 마지막 혈육인 미하일 프린츠의 마지막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아들의 유품들. 붓과 팔레트 그리고 몇 점의 그림들. 대재앙을 견뎌 내고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거대한 녹지인 푸르른 하바로프. 그 하바로프를 그린 그림이 랄프 프린츠 장군의 눈에 들어왔다. 미하일이 왜 굳이 중앙군을 마다하고 이곳 경비대를 지원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미안했다. 이렇게 일찍 떠날 줄 알았다면 좀 더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도와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한없이 미안했다. 그리고 이제는 미안하다는 말을 전할 수 없다는 사실에 초로의 노장군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행사장에 나가야 할 시간이다.
시청 광장에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에 슬퍼했다. 대재앙과 루체와의 연이은 전쟁으로 이제는 어느 정도 죽음에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언제나 죽음이라는 이별은 낯설고 슬픈 것인 듯싶었다.
영결식은 그 어느 때보다 성대했다. 이전 어느 전사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바로프의 랑베르 위원장 그리고 남부 사령부 사령관 조지 슐터에 중앙군 치안유지군의 장성급 인력을 포함한 인근 3개 지역의 연방군과 경비대 인력이 참석하는 등 근래 들어 가장 큰 규모의 영결식이 되었다.
사실 전시에 전사자들에 대한 영결식이라는 것이 말이 안 되지만 반란군으로부터의 정당성 부여와 여러 정치적인 목적이 가미되자 영결식의 규모는 예상보다 훨씬 커지게 되었다.
엄청난 인파와 다채로운 군복의 군인들에 사람들은 잠시 슬픔을 잊고 신기해한다. 루디안 같은 비교적 작은 도시에 이렇게 많은 군인들과 사람들이 운집한 것은 거의 처음이기 때문이다.
“아…… 저것들은 뭐지?”
사람들이 허공을 떠도는 비행체들을 보고 신기해한다. 대재앙 이후 비행체들은 거의 보기가 힘들었다.
“스카이드론이라는 거야.”
이곳저곳을 다녀 좀 주워들은 것이 있는 듯한 꾀죄죄한 옷차림의 한 사람이 말한다. 검은 테의 안경을 추켜올려 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외모와 생김새이다.
“스카이드론?”
“작년부터 보였는데 저기 카메라로 감시도 하고 공격도 가능한 무인 비행체야.”
“혹시 저건 뭐에요?”
경비대들이 VIP 단상 쪽으로 깔아 놓은 패드를 보며 또 궁금해한다.
“저건 에그실드라고 요인경호용 보호막 같은 거야. 저 패드 같은 것에 올라서면 5분간 몬티움 광선이 계란처럼 뿌려져 저 패드의 넓이만큼 안전지역을 확보하지. 저 동그란 패드 위에 올라 있으면 옆에서 폭탄이 터져도 끄떡없지. 휴대용 무기로 사용되기도 하고.”
“와…… 신기한 게 엄청 많네요.”
신기한 무기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 곁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귀를 기울인다.
“뭐 높은 사람들이 많다 보니 경호가 철통같네. 반란군의 위세가 예사롭지는 않은가 보네.”
“반란군이요?”
한 사람이 큰 소리로 깜짝 놀라 말한다. 검은 테 안경이 검지를 입에 갖다 대고는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반란군의 규모가 점점 커진다는 소문이 있어.”
“그래요?”
“게다가 반란군 대장이 누군지 알아?”
“네? 누군데요?”
“바로 모스크의 라이너 카이슨이라는 거야.”
라이너 카이슨은 닉스 연방 건국의 영웅 중 한 명으로 닉스와 함께 가장 현명한 지도자 중에 한 명으로 불렸으나 루체 왕국의 테러로 아깝게 희생되었었다.
“에이 거짓말. 라이너 카이슨은 독수리의 눈물 사건 때 죽었잖아요.”
“아니야. 분명 살아 있는 걸 봤다는 사람들이 있어.”
“전 못 믿겠어요. 전 묘지에 참배까지 한걸요.”
“혹시 왜 이렇게 영결식에 군인들이 엄청나게 깔렸는지 생각해 봤어?”
“아…… 그거야 저렇게 많은 VIP들이 왔으니까?”
“그뿐이 아닌 거야. 반란군의 규모가 점차 커지니까 민심 무마용으로 이렇게 영결식을 크게 하는 거지. 이건 다 쇼야, 쇼.”
“에이 설마…….”
사람들은 애써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정말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반란군의 확대와 라이너 카이슨에 대한 이야기들이 단지 풍문 같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은 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검은 안경의 사람은 이미 인파 속 깊이 사라진 이후였다.
웅성웅성하던 사람들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아들을 잃은 노장군 랄프 프린츠 장군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머리에 두른 하얀 붕대가 그날의 참담한 상황을 보여 주고 있었다. 초대 중앙군 사령관으로 연방 통일의 초석을 다진 닉스 연방 군부 최고 영웅이었지만 오늘은 아들을 잃은 한 나이 많은 노인에 불과했고 평소에 풍기던 기백과 의연한 풍모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늙은 영웅의 등장과 젊은 영웅의 죽음은 묘한 대비를 이루며 슬픔을 자아냈다. 단상을 향하던 랄프 프린츠 장군을 누군가 정중히 잡아 세운다. 그러더니 그가 단상에 올라선다.
“영결식을 조금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막 미하일 중위가 생환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영결식장이 웅성웅성한다. 죽은 사람이 살아왔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자초지종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왕좌왕했다. 그때 ‘미하일 프린츠 만세’ 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너도 나도 하나씩 따라 말하기 시작한다.
“미하일 프린츠 만세!”
“미하일 프린츠 만세!”
미하일의 권총을 경비대에 전달하느라고 뒤늦게 영결식에 오게 된 예리엘과 두 덩치는 영결식장의 이상한 환호성과 분위기에 당황했다.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지?”
호퍼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그리고는 일행에게 쏜살같이 달려온다.
“미하일 중위님이 돌아왔다는 거야?”
“정말?!”
“그럼 아이딘도!”
예리엘과 두 덩치의 눈이 모두 동그래졌다. 예리엘과 두 덩치들이 영결식장을 빠져나와 경비대 건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리고 낯익은 경비대원을 붙잡고 물어봤다.
“미하일 중위님이 살아 돌아오신 건가요?”
“어, 예리엘. 아마 그렇다는데. 지금 모두가 정신이 없어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고. 중앙군 순찰대에 발견되었다는데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도 목숨에 지장은 없다는 거 같아.”
“그럼 아이딘은, 아니 다른 사람은요?”
“민간인 두 명이 있었다는데 모두 무사하다는걸?”
“두 명?”
“한 명은 전에 그 빨간 머리하고 또 페이인가? 그 퍼플 하스피탈의 의사.”
“페이 언니도?”
아이딘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예리엘과 덩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모두가 왜 아이딘이 페이와 함께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어서들 집에 가. 반란군과 대규모 교전이 벌어진다는 소문이 있다고.”
“네? 전쟁인가요?”
잭슨이 참견한다.
“원래 전쟁 중이었잖아. 어서들 가. 나도 곧 나가야 될지도 몰라.”
경비대원이 군장을 손보며 말한다.
“어떡하지?”
“뭘 어떡해. 무작정 여기서 기다릴 수도 없고. 가게 가서 기다리는 게 좋겠지.”
예리엘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돌린다.
* * *
“중앙군이다!”
란돌 대장은 기뻤다. 이 3일간의 말도 안 되는 긴 여행, 아니 모험, 사투, 딱히 표현하기 힘든 3일의 행적이 드디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페이…… 정신 차려. 중앙군이야! 이제 다 끝났다고.”
등에 업혀 있던 페이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여정 내내 별 불평 없이 사고 없이 잘 따라온 페이였지만 어제 저녁부터는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란돌 대장이 있는 힘껏 돌봐 준다고는 했지만 상황 상 한계가 있었다. 어젯밤부터는 몸이 부쩍 안 좋아져 아예 란돌 대장이 계속 등에 업고 다녔다.
페이가 란돌 대장에게 살며시 속삭였다.
“란돌 고마워요.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그녀가 란돌의 목덜미에 키스를 해 준다. 란돌은 순간 짜릿한 감정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다.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을 잊게 만들 만큼 란돌에게는 최고의 보상인 듯싶었다.
중앙군들이 발 빠르게 움직인다. 일단 루디안 외곽에 중앙군 임시 기지로 란돌 대장과 일행을 인도했다. 임시 기지에 도착하자마자 의무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미하일 중위를 바쁘게 치료한다.
미하일 중위는 기지에 도착하자 정신을 잃었다. 처음에는 긴장이 풀려서라고 생각했는데 부상 부위에 패혈증이 발생해서 좀 심각한 지경이라고 한다.
페이는 심한 탈수와 피로감으로 링거를 맞고 잠들었고 아이딘은 특별한 이상이 없어 페이와 함께 막사에서 쉬도록 했다고 한다. 란돌 대장 역시 배당된 막사에서 잠시 대기하기로 했는데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란돌 보나드 소령.”
“란돌 보나드 소령.”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란돌 대장이 눈을 뜬다. 막사 안에 중무장한 중앙군 몇 명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란돌 대장은 무슨 일이 있었나 하며 자신을 부르는 사람을 쳐다본다. 중앙군 치안유지군의 복장이다. 어깨의 계급장을 보니 소령이다. 자신보다 하급자가 왜 이렇게 요란을 떠는지, 자신을 왜 소령이라 부르는지 의아해한다.
‘소령? 중령도 아니고?’
문득 이제 대령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무슨 일인가?”
“무슨 일? 정신 좀 차리게 해라.”
“네.”
갑자기 옆에 있는 병사가 란돌 경비대장을 군화발로 걷어찬다.
퍽.
“윽…….”
강성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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