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황야의 만남 (4)
펑.
마을 어딘가에서 들려온 폭발.
그 충격에 사무소의 창문과 문이 흔들렸다.
“무슨 일이지?”
보안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눈에 감방의 열린 문이 들어왔다.
“이럴 수가!”
감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보안관은 당장 무기 보관함을 열어 그 안에 든 ‘마총’을 찾았다.
마총, 리볼버.
평범한 형태의 리볼버처럼 생겼지만, 회전 탄창 부분의 형태가 원통이 아닌 구체에 가까웠다.
안에 넣는 총알은 납탄이 아니라 마탑에서 생산되는 구슬.
구슬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쏘는 일종의 광선총이었다.
격발 수는 구슬의 질에 비례.
길드에서 생산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마총을 본 순간, 보안관은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마총이 달랑 한 정.
원래 들어 있던 다섯 정 중,
세 정은 동료들이 갖고 떠났고,
두 정이 남아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사라진 한 정은?
보안관은 리볼버를 들고 서둘러 사무소를 나섰다.
“어디 갔지? 방금 나갔을 텐데…….”
멀지 않은 거리.
사라진 두 사람을 포함한 네 사람이 가고 있는 게 보였다.
“거기, 멈춰! 안 그러면 쏜다!”
보안관은 리볼버의 안전장치를 풀면서 넷에게 다가갔다.
넷은 그의 외침을 듣고 일단 발걸음을 멈췄다.
“탈주 공모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한다! 뱃가죽에 구멍 뚫리기 싫으면 허튼짓은 안 하는 게 좋아! 양손 들고 뒤로 돌아서.”
넷은 보안관이 시키는 대로 양손을 위로 들며 뒤로 돌아섰다.
보안관은 감방에 갇혀 있던 글랙과 마일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다른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 아니! 너희들은……!”
로스와 김촌상.
둘은 무슨 일인지 각자 사이좋게 한쪽 다리를 다쳐서 붕대를 감고 있었다.
“우리 마을에서 치료를 받자마자 또 나쁜 짓을 하는 거냐? 이런 배은망덕한 자식들! 이래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니까!”
“보안관 나리, 감히 우리 옐로우 클랜 조직원을 건드리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하셨어?”
다섯 번째 인물의 목소리.
보안관은 등에서 느껴진 딱딱한 감촉에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뗐다.
“넌 또 뭐야?”
“내 이름은 파이브. 당신 같은 구닥다리 촌놈은 평생 들어 볼 일이 없을 이름이지.”
파이브.
그는 글랙에게 고갯짓을 했다.
글랙은 그의 명령에 따라 보안관의 손에서 리볼버를 뺏었다.
“우리가 좀 바쁘거든. 어?”
파이브는 고개를 쭉 빼서 보안관의 왼쪽 가슴에 있는 별 배지를 떼어 내 자세히 들여다봤다.
“이제 보니까, 정식 보안관이 아니라 대리 중인 부보안관이었잖아? 어쩐지 보안관치곤 말투가 너무 천박하더라니…….”
파이브는 뒤에 선 넷에게 배지를 보여 줬다.
“이봐, 너희들. 혹시 보안관과 부보안관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
파이브의 질문에 네 사람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지 않았다.
“무식한 새끼들! 잘 들어.”
파이브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보안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보안관은 MGF에서 파견된 사람이라 함부로 건드리면, 해당 층에 있는 거주 구역에서 추격 인원이 나오지. 즉, 귀하신 몸이란 거지.”
파이브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부보안관은 해당 마을 주민 중에서 보안관이 임명하는 거라 죽여도 중앙에서는 신경도 안 써. 물론 현상금은 오르겠지.”
파이브가 든 것은 동전.
한쪽 면엔 흰색 악마 그림.
반대편엔 검은색 천사 그림.
“흐름상 여기서 이 가짜 보안관을 죽여야겠지만, 그냥 죽이는 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안 그래?”
불공평?
네 무법자는 파이브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었다.
“흰색이 나오면 나. 검은색이 나오면 가짜 보안관. 구슬은…….”
파이브는 리볼버의 회전 탄창을 열었다.
일반적인 리볼버처럼 회전 탄창이 옆으로 빠지며 그 안에 담긴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5번 구슬이네? 그럼 다섯 발?”
그는 앞에 선 넷이 어떤 표정을 짓든 말든 동전을 손에 쥐었다.
“그럼 던지자고.”
파이브는 엄지로 동전을 튕겼다.
빙그르르.
동전은 회전하며 공중을 날다가 다시 그의 손으로 떨어졌다.
윗면으로 나온 건?
“오오, 운이 꽤 좋은데?”
파이브는 리볼버로 자기 관자놀이를 겨눴다.
그야말로 미친 짓.
철컥 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분홍색 광선이 튀어나왔다.
“크윽.”
짧은 신음 소리.
광선이 파이브의 머리를 깨끗하게 관통했다.
정면에서 보면 구멍을 통해 반대편이 보일 정도였다.
“허걱!”
넷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그저 입만 벌렸다.
더 놀라운 것은 머리에 구멍이 뚫린 파이브의 다음 행동이었다.
“그럼 또 던진다?”
빙그르르.
또 흰색 악마.
파이브는 지체 없이 또 자신의 머리를 쐈다.
“이제 세 번 남았어.”
세 번째.
드디어 검은색 면이 나왔다.
“당첨!”
파이브는 보안관의 뒤통수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팡.
보안관의 눈자위가 뒤로 돌아가며 그의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그럼 다음…….”
“이미 죽었는데요?”
글랙이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그러자 파이브가 잔뜩 얼굴을 구기며 목소리를 깔았다.
“그럼 남은 두 번은 네가 대신할래? 너도 대가리 대든지?”
무슨 일이 있어도 구슬의 탄환을 비울 기세.
글랙은 완전히 질려 버렸다.
“죄, 죄송합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이번엔 연속으로 검은색.
죽은 보안관의 머리에 구멍 두 개가 더 뚫렸다.
“역시 마총은 길드제가 최고야. 짝퉁하곤 손맛이 다르다니까!”
파이브는 웃으면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구슬을 꺼내 리볼버의 빈 탄창에 넣었다.
“그 이건기란 놈도 참 재수가 없지. 하필 리치를 죽일 게 뭐람? 그놈이 중요한 물건을 갖고 있지만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파이브는 리볼버로 주변을 겨누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근처에서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이 질겁하며 도망쳤다.
그들은 보안관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음에도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다.
치안 지대인 거주 구역 밖 황야에서의 삶은 그런 것이었다.
“그럼 가자.”
다섯 무법자는 서쪽을 향했다.
그런데 마을을 가로지르던 중 잿더미로 변한 가게를 발견했다.
“뭐지?”
파이브는 혀를 차면서 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살펴봤다.
무수한 발자국 중 가장 최근 것은 두 개.
둘 다 가게 안으로 들어갔지만, 나온 것은 한 명뿐.
그는 박수를 치면서 웃었다.
“아무래도 파이톤, 그 새끼가 실패한 모양이네? 선수를 뺏기지 않아서 다행이야. 이대로 죽어 주면 고마울 텐데…….”
비웃음과 함께 다섯이 떠나고.
가게 잔해가 들썩이며 그 속에 있던 파이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완전히 까맣게 탄 검댕이 신세.
그는 가래를 긁어모아 크게 한 번 침을 뱉었다.
“젠장, 입이 꼭 비싼 시가를 피웠을 때 같잖아.”
파이톤은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한 다음, 지나가는 마을 주민을 죽이며 그로부터 다섯 무법자의 정보를 들었다.
그리고 그 역시 그들을 따라 서쪽으로 향했다.
***
반나절, 또는 몇 시간 뒤.
그리고 마탑 10층.
건기는 건빵을 씹으며 황야를 걷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엔 단 하나뿐이었다.
“더럽게 머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되는 거야?”
[지구력이 올랐습니다.]
***
[등급 : E]
[근력 : D] [순발력 : D]
[지구력 : C] [지력 : A]
[스킬 : 없음]
***
회귀 후 계속된 여정.
지구력이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분명 이 길이 맞는데…….”
건기는 마을과 마을 사이에 이어진 긴 발자국을 따라 정체 없이 걷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 발자국이 희미해지면서 나침반으로 겨우 서쪽만 확인하는 상황에 처했다.
“혹시 지나쳤나?”
아무리 경험이 풍부해도 익숙하지 않은 지형에서,
위치를 파악하고 목적지까지 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때 건기의 눈에 멀지 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오오!”
연기가 난다는 것은 곧 누군가가 근처에 있다는 뜻.
건기는 연기를 향해 뛰었다.
“응?”
혼자 타고 있는 모닥불.
아무도 없었다.
“모닥불만 있고, 피운 사람은 없다고?”
건기는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다.
대신 거리를 둔 채 모닥불 주변을 찬찬히 살폈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주변에 갈대더미가 반원 형태로 뭉쳐 있었다.
“어느 개울가에 사는 삼류 작가의 장르소설처럼 너무 지나치게 인위적인 냄새가 나는데?”
갈대더미의 크기는 딱 사람 하나 들어가서 웅크릴 정도.
건기는 배시시 웃으며 느긋하게 모닥불로 다가갔다.
그리고 일부러 갈대더미를 등 뒤에 둔 채로 앉았다.
탁탁 타오르는 모닥불 소리와는 별개로 갈대더미가 들썩이는 소리.
분명 사람이 내는 소리였다.
“어떻게 한다?”
대놓고 나오라고 할까?
아니면 상대를 도발할까?
그것도 아니면 일부러 취약하게 보여서 상대의 공격을 유도할까?
건기는 어떻게 상대를 조질지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거기에는 어쩌면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알고 있을지 모른단 기대도 섞여 있었다.
‘자, 어서 덤벼 와라.’
건기는 상대의 기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며 아예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상대는 덤벼오지 않았다.
“뭐지?”
건기는 살짝 짜증이 나서 슬쩍 갈대더미를 살폈다.
분명 장시간 몸을 웅크리느라 불편할 터.
참 오래도 버티고 있었다.
“왜 안 나오는 거야?”
결국 건기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는 모닥불에서 활활 타오르는 장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어깨 뒤로 던져 갈대더미 속에 쏙 버렸다.
“아아, 목말라.”
건기는 페트병을 꺼내 생수를 홀짝였다.
그리고 뒷목으로 느껴지는 열기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끼며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으아아악!”
머리에 불이 붙은 남성이 덤불더미에서 튀어나와 건기의 옆에서 뒹굴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에 붙은 불에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아.”
건기는 마시던 물을 남성의 머리에 부었다.
불은 간단히 꺼졌고, 남성은 거친 숨을 내쉬면서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네.”
건기는 한숨을 푹 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매복한 게 아니라 겁먹고 숨어 있던 거지?”
건기의 말에 남성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 너, 넌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도대체 내가 거기 숨어 있었던 건 어떻게 알았지? 설마 처음부터 작정하고 노린 거냐!”
“그럴 리가? 돈도 없어 보이는 구질구질한 아저씨를 노리는 할 일 없는 강도도 있어?”
뜨끔.
건기의 한 마디로 남성의 자존감이 붕괴했다.
실제로 그는 거의 빈털터리였다.
“내가, 인마! 가족을 위해, 인마! 돈을 벌려고, 인마! 하고 있는데, 인마! 네가……!”
남성은 울부짖으며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불이 붙었던 덕에 그의 머리는 완전 새까맣게 타서 숱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건기는 남성의 머리를 뚫어져라 보다가 한 마디 내뱉었다.
“화상이 없잖아?”
“당연하지, 인마!”
남성은 머리에 손을 올리더니, 당당히 머리 가죽을 뜯어냈다.
그의 과감한 행동은 건기마저 잠시 얼이 빠질 정도였다.
“뭐, 뭐 하는 거……!”
머리 가죽을 뜯어낸 아래.
두피의 매끌매끌한 부분이 드러나며 광채를 뿜어냈다.
“가발?”
남성은 머리 가죽이 아닌 검게 탄 가발을 흔들어 보였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건 그냥 가발이 아니야! 최상급 모히칸 가발이란 말이야! 너 인마, 이 디자인이 얼마나 구하기 힘든 건 줄 알아? 엉!”
모히칸.
건기는 손가락으로 뺨을 긁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쩌라고? 가발 가격은 변상해줄게. 얼마면 돼?”
“에잇!”
남성은 건기를 향해 손을 뻗더니, 힘차게 외쳤다.
“엑스 포켓!”
건기는 뒤로 펄쩍 뛰면서 재빨리 남성과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그의 염려와는 달리 남성은 건기가 흠칫하는 순간 뒤로 돌아서 달렸다.
“햐햐햐!”
남성은 쌩 하며 엄청난 속도로 건기에게서 도망쳤다.
“뭐야?”
건기는 도망치는 남성을 그냥 쳐다보면서 피식 웃었다.
“무슨 스킬이었지?”
남성이 외친 ‘엑스 포켓.’
스킬이 실제 존재한다면,
스킬 이름을 외친 이상,
발동은 절대적.
스킬 시전에 불발은 없었다.
개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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