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아만전사 카르고 17화

2019-07-15 11:14
테라-아만전사 카르고 17화
[데일리게임]

“나 역시 마찬가지야. 몬스터를 사냥해서 신력만 얻을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상관없어. 전리품을 하나도 안 나눠 줘도 된다고.”

세실리아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은 카르고가 그럴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료가 된 이상 잡은 몬스터로부터 얻은 소득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모든 전리품은 머릿수에 맞게 공평하게 분배한다. 누가 힘을 더 쓰고 덜 쓰고는 중요하지 않아. 모두가 힘을 합쳐 잡았다면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철칙이다. 그게 바로 아만족의 방식이지.”

두카와 포르나의 눈이 커졌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물론이다.”

세실리아가 부연설명을 했다.

“우선은 카르고 님의 몸을 보호해 줄 갑옷이 시급해요. 그리고 무기를 사느라 빚을 많이 졌어요. 현재로서는 남은 잔금과 갑옷 대금을 치르는 것이 우선이에요. 그것을 해결하고 나면 이후부터는 얻은 전리품은 공평하게 나누자고 카르고 님이 말씀하셨어요. 누가 역할을 더 하고 덜 하고를 떠나 함께 고생했으니 마땅히 전리품 분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이에요.”

포르나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지금 카르고의 언행은 통상적인 모험가 파티의 상식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었다. 보통의 경우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데 공헌을 한 순서대로 차등 분배하는 것이 철칙이다. 그러나 카르고는 그것을 통째로 부정해 버렸다.

“내 파티에 든 이상 모든 전리품은 공평하게 나눈다. 이의 없겠지?”

물론 포르나와 두카가 이의를 제기할 까닭이 없었다. 카르고가 빙그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제 나도 발키온 연합의 일원이니 인간들의 방식에 익숙해져야겠지? 내 동료가 된 것을 환영한다.”

카르고의 큼지막한 손을 붙잡은 포르나의 눈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실력과 경험 여하를 떠나 파티의 동등한 자격으로 받아들여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명으로 구성원이 불어난 카르고의 파티는 즉각 현장 정리를 했다. 포르나는 죽은 동료들로부터 갑옷과 무기를 모두 수거한 다음 땅을 파고 시체를 고이 묻어 주었다. 사방에 널린 오칸의 시체로부터도 무구들을 수거했다. 녹이 슬고 찌그러졌지만 금속 종류이기 때문에 레나르에 가서 내다 판다면 상당한 금액을 건질 수 있었다.

백여 마리가 넘는 오칸 무리로부터 수거한 전리품의 양은 상당히 많았다. 일행은 그것을 말을 매어 놓은 곳으로 옮겼다.

말은 파티가 전멸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매여 있었다. 스티브가 사제 고유의 권능을 이용해서 기척을 감춰 두었기에 몬스터의 이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되어 있었다.

수레에다 전리품을 실은 두카가 눈빛을 빛내며 카르고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오칸의 소굴을 마저 정리하는 게 어때? 쓸 만한 전사들이 모두 죽었으니 말이야. 수레가 있으니 옮기는 것은 문제되지 않을 테고.”

“그렇게 할까?”

두카의 의견에 세실리아와 포르나도 동의했다. 오칸의 소굴에 남겨진 무리는 고작해야 오십 마리 정도, 그것도 태반이 암컷과 새끼들이다. 내버려 두면 다른 모험가 파티에 횡재를 안겨 줄 뿐이었다.

결론을 내린 파티는 즉각 오칸의 소굴을 공격해 들어갔다.

싸움은 극히 싱거웠다. 소굴에 남겨진 것은 겨우 십여 마리의 전사가 전부였다. 그중 한 마리는 세실리아의 얼음 화살에 맞아 장님이 되어 나뒹굴었고 나머지 아홉 마리는 카르고가 눈 깜짝할 사이에 전멸시켜 버렸다.

카르고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자 소굴에 있던 암컷과 새끼들은 괴성을 지르며 뿔뿔이 도망쳐 버렸다. 그래 봐야 다른 몬스터의 먹이가 될 것이 분명했지만 막강한 위용을 보여 준 적을 향해 달려들 용기란 없었다.

오칸족의 소굴에서 그들은 상당히 많은 전리품을 챙길 수 있었다. 필드에서 죽은 모험가의 장비나 소지품이 오칸족의 손에 수거되어 가득 쌓여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오칸에게 사냥당한 모험가의 것도 많을 터였다.

“휘유! 엄청나군. 수레가 있는 곳까지 옮기는 게 문제겠어.”

그러나 그것은 카르고가 나서서 간단히 해결했다.

우직, 우지직.

카르고가 칼리아스를 휘두를 때마다 아름드리나무가 맥없이 넘어졌다. 길을 막는 나무를 베어 수레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길이 완성되었고 네 마리의 말이 더 묶여 6두마차가 된 수레가 오칸의 소굴 바로 앞까지 진입해 들어왔다. 일행들은 부산하게 움직이며 소굴에 쌓인 전리품을 수레에 옮겨 실었다.

“수레를 개조해야겠군. 더 크게 만들어야 되겠어.”

두카가 달려들어 수레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재료는 사방에 널려 있었다. 카르고가 쓰러뜨린 나무를 손도끼로 잘라 낸 두카가 숙련된 손길로 수레를 보강했다. 바퀴도 두 개 더 달았다. 타고난 장인 종족답게 나무 다루는 솜씨가 대단했다.

“됐어. 이 정도면 아펜디아 분지에서 레나르까지 몇 번을 왕복해도 너끈히 견딜 거야.”

전리품을 챙긴 파티는 곧 그곳을 떠났다. 올 때와는 달리 수레에 전리품을 가득 싣고 말에 올라타 카누바라크의 레어까지 가는 것이다.

다행히 말 중에는 카르미나 고원산의 덩치 좋은 녀석이 한 마리 있었다. 비싸기로 소문난 그 말은 원래 세아트가 애용하던 말이었다. 주인이 바뀐 카르미나 고원산 말은 카르고를 등에 태우고도 무리 없이 걸음을 옮겼다.

세실리아도 얌전한 암말 한 마리를 골라 포르나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그 뒤에는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두카가 능숙한 솜씨로 몰고 있었다.

* * *

“이곳이 바로 카누바라크의 레어야.”

목적지에 도착하자 일행이 상기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위는 음산한 기운이 잔뜩 깔려 있었다.

카누바라크의 레어는 널찍한 분지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름이 2미터가 되지 않는 동굴이 바로 카누바라크의 레어 입구였고, 총 길이가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깊숙하고 복잡한 터널의 가장 중심부에 카누바라크가 있었다. 동굴 입구 주변의 공터에는 몬스터나 마수의 뼈가 흉측하게 널려 있었다. 앙상한 뼈마디가 반쯤 녹은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카누바라크가 먹고 버린 것 같네. 그나저나 상당한 악조건이로군. 이런 좁은 터널 속이라면 포위 공격을 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텐데.”

낙천적인 성품의 두카도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직접 레어의 형상을 보니 카누바라크를 잡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통상적으로 모험가들은 진형을 짜서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한다. 전사들이 달려들어 근접전투를 벌이는 사이 마법사와 궁수가 넓게 퍼져서 원거리 공격을 가하고 사제가 치유 주문으로 선두의 전사를 치료한다. 그러나 카누바라크의 레어는 진형을 짜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우선 좁은 터널은 두 명이 나란히 서는 것조차 버거웠다. 체격이 좋은 카르고가 들어간다면 금세 꽉 차 버릴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후미의 마법사나 궁수가 공격을 퍼부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사제가 치유 주문을 외울 만한 시야도 나오지 않는다. 상처를 직접 눈으로 봐야 치유를 할 수 있지만 좁은 통로 뒤에서 어찌 공격받는 전사의 몸 앞부분을 살필 수 있단 말인가?

포르나 역시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불가능해.’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카르고의 파티는 처음으로 그녀를 동등한 조건의 동료로 받아들여 주었다. 전리품도 머릿수대로 나눠 준다고 했다. 양심상 그런 파티를 내버려 두고 도망칠 순 없었다. 설사 죽더라도 동료들과 함께 행동해야 했다.

바로 그때 카르고가 손을 들었다.

“사냥은 나 혼자서 한다.”

그 말에 세실리아와 포르나, 두카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 무슨 소리야!”

“카누바라크를 잡는데 어찌 혼자서 한다는 말이야?”

카르고가 평온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모두 느꼈겠지만 카누바라크의 레어는 많은 인원이 움직이기 힘든 장소야. 모두 들어가 봐야 방해만 될 뿐이지. 그리고 카누바라크는 원래부터 나 혼자서 잡을 생각을 하고 있었어.”

“말도 안 돼. 우린 동료야. 그런데 어찌……?”

“그러니까 혼자 하겠다는 거야. 카누바라크는 퀘르바임 종류의 몬스터야. 더 크고 강하긴 하지만 기본적인 특성은 똑같아. 그리고 우리 아만족 전사들은 지금껏 지겹도록 퀘르바임을 사냥해 보았어. 내가 살던 얼음 산맥에는 퀘르바임이 무척 많았지. 방법만 알면 사냥하기가 지극히 쉬운 것이 퀘르바임이야. 공격 패턴을 모조리 꿰고 있기 때문이지. 그러니 아무 말하지 말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카누바라크를 확실하게 잡아 올 테니 말이야.”

“하, 하지만…….”

그러나 카르고의 고집은 질기기로 소문난 리퍼의 앞다리 힘줄보다도 질겼다.

“잘 들어. 난 새로 얻은 동료들을 이런 곳에서 잃고 싶지 않아. 그러니 내 말대로 따르도록 해. 포르나가 있다면 기척을 지우고 안전하게 있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결국 그들은 카르고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함께 간다고 해도 자신들의 실력으로는 카르고에게 짐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뭐라도 도울 게 없는지를 살폈다. 가장 먼저 세실리아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캐스팅을 했다.

“부디 조심하세요.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이라곤 독에 대한 저항력을 미미하게 올려 드리는 것뿐이네요.”

포르나 역시 마나를 쏟아부어 카르고의 몸을 일정 시간 동안 강화시켜 주었다.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 행한 것이었다. 그러나 두카는 해 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카르고의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는 두카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친구. 부디 살아서 돌아와야 해. 너처럼 마음에 드는 동료를 잃고 싶지 않아.”

“걱정하지 말고 수레나 손봐 두도록 해. 카누바라크의 시체를 실으려면 수레가 더 커야 할 거야.”

“그거야 문제없지.”

카르고가 씩 웃으며 허리에 찬 칼리아스를 뽑아 들었다.

“그럼 다녀오지. 혹시라도 내가 열 시간 내에 나오지 않으면 이곳을 떠나도록. 알겠지?”

“그렇게 하지.”

“좋아. 그럼 다녀오겠다.”

그 말을 마친 카르고가 동굴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파티원들이 멍하니 쳐다보았다.

“괘, 괜찮을까?”

“모르지. 그저 무사하길 바라는 수밖에…….”

“그나저나 간이 엄청나게 큰 친구로군. 혼자서 카누바라크의 레어로 뛰어 들어가다니 말이야.”

“그럴 수밖에. 카르고 님은 아케니아 혈족 중 살아남은 유일한 전사라고 해.”

“어쩐지……. 아만족에 대해 듣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라서 좀 혼란스러웠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파티원들은 한참 뒤에야 주변을 살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마냥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그를 믿고, 그의 귀환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 포르나는 일행의 주위로 결계를 치고 기척을 숨겼다. 그렇게 하면 소리와 냄새가 결계 밖으로 퍼져 나가지 않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몬스터가 선공을 하는 경우가 없을 터였다.

두카는 근처에서 나무를 잘라 와서 수레를 보강하기 시작했다. 크기로 소문난 카누바라크를 실으려면 지금보다 수레가 훨씬 커야 했다.

모두가 하던 일을 끝마친 후로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레어로 들어간 카르고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터널이 워낙 깊어서 싸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터널 입구를 힐끔거렸다.

“과연 무사히 나올 수 있을까?”

“그거야 알 수 없지.”

사실 포르나의 실력으로는 일행의 기척을 모두 감추기가 어려웠다. 아직까지 수준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접근하는 몬스터는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은 무시무시한 네임드 몬스터 카누바라크의 레어 입구이다. 막강한 카누바라크의 존재감 때문인지 몬스터는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파티원들은 가슴을 졸이며 카르고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키에에엑!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단한 껍질이 깨져 나가며 싯누런 체액이 튀어 올랐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카누바라크가 아가리를 좍 벌렸다. 혀가 오므려지며 하얀 독액이 좍 뿜어졌다. 덮어쓰는 즉시 희생자의 생체조직을 순간적으로 녹여 버리는 극독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독한 독액이라도 뒤집어쓰지 않으면 무용하다.

독액은 텅 빈 자리에 흩뿌려졌고 카르고의 몸은 이미 옆의 공동으로 들어가 있었다. 카르고의 먼지투성이 얼굴에서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역시 이놈은 전형적인 퀘르바임이야.”

슬쩍 미소를 지은 카르고가 공간 밖으로 튀어 나갔다. 조금 전까지 그가 들어 있던 공간에 거대한 카누바라크의 아래턱이 쑤셔 박혔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확 피어났다.

김정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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